얼마 전, 친구랑 카페에 갔어요. 빈티지 조명, 가구를 수집하는 사장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는데요. 독특한 디자인의 조명들을 구경하다가, 자신만의 취향으로 집을 잘 꾸며놓은 사람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도대체 그럼 저 특이한 소파는 얼마지? 이런 걸 찾아보다가, 결국 이런 대화에 이르렀어요. "다음 생엔 가구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 "다음 생에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 "그러게...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것보다 다음 생에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네^_^" 

 왜 그렇게 다음 생으로 미루게 되는 걸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난 독특한 빈티지 가구를 보면 예쁘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저런 빈티지 가구를 아무렇지 않게 턱턱 살 수 있는 돈을 벌면 좋겠다, 생각하기보단 '저런 걸 만드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그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구나. 그렇지만 이번 생엔 그런 재능이 없으니, 다음 생엔 저 직업을 해야지! 같은 상상을 하는 거구나. 다음 생엔 뭘 해도 귀여움만 받는 부잣집 리트리버로 태어나겠어요, 말하다가도 다음 생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은 모순적인 사람. 그렇다면 이번 생은 어쩌지? 

 인생은 길고, 일단 해보면 되잖아! 혹시 알아, 그런 재능이 있을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진이 빠지고, 그나마 잘할 가능성이 있는 일을 좀 더 해보자 생각만 하는 편이랄까요. 아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그리고 딱히 잘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무모하게 도전할 에너지가 없다는 게 종종 슬퍼질 때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생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게 어딘가, 그렇게 궁금해하고 탐나는 영역들이 있다는 게 어딘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3월을 맞이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혹은 저처럼 다음 생에 넘겨주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영화 <미드소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영화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왔던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바로 A24가 배급했다는 것. '믿고 보는 제작/배급사'로 워낙 유명하기에, 영화 예고편에 A24가 뜨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님도 올해 처음으로 별점 5개를 줬다? 그 주에 당장 달려가서 봤던 작품입니다. 영화 <애프터썬>은 20년 전 오래된 캠코더 속 아빠와 갔던 튀르키예 여행 조각들을 담고 있어요. 영화 소개글만 봐도 알겠지만, 대단한 반전이나 클라이막스를 지닌 작품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렇지만 상업 영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공백과 텀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인 대사로 꽂아넣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이미지를 통해 스며들듯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고요. 특히 이 영화는 마음에 남는 엔딩씬을 건진 것 하나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는데요. 그 장면을 봤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메모장에 우르르 이야기를 적었던 영화. 지금 극장에서 만나보세요💍

노트북에 영화 한 편을 틀어둔 채 계속, 계속 원석 구슬을 꿰었다. 다 만든 다음에는 한 번씩 걸쳐보고서 다시 잘랐다. 그리고 다른 조합으로 또 구슬을 꿰었다. 그 취미는 단순 노동이라 눈이 심심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 콘텐츠를 즐기기 시작한 건 그즈음부터였다. 나는 내가 만들고 자른 팔찌의 개수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다.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보다 보니 그 안에서 취향이 생겨났다. 손으로는 구슬을 꿰고, 눈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었다. 나중에는 손을 움직이지 않고 영화만 보았다. 너무 이상하고 아름다우며 다양한 세상이, 삶이 그 안에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벼락같이 깨달은 것이다. 내가 종로의 보석상과 삼청동의 미술관들을 누비며 눈에 담았던 반짝임이 그 안에도 있다는 걸.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들을 좋아합니다. 이게 왜 좋은지, 어디가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하나하나 구석구석 샅샅이 말하게 되는 순간들. 어느 순간 몰입해서 '내가 왜 이런 것까지 말하고 있지?' 싶을 정도로 신나게 말하다가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머쓱하게 되는 순간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순간들이 드물고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영화를 사랑하게 되고, 그 힘으로 이야기를 만들게 된 순간의 고백처럼 느껴져서 좋았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고, 오래도록 좋아하는 마음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그런 마음이 닳지 않게,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접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개봉했던 영화 <바빌론>이 영화에 대한 절절한 고백을 담았다던데, 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네요. 이미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살짝 후기 알려주세요🖤

 딱 이 시대에 쓸 수 있는 가사다. '우린 왠지 다시는 안 보게 될 것 같아 / 그냥 인스타그램에서만 볼 거야'. 이 노래의 하이라이트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10년 전엔 싸이월드였고, 지금은 인스타그램이고, 10년 후엔 어떤 게 될진 모르겠지만요. 매체만 변화할 뿐 '다시는 안 보게 될 것 같지만 000에서만 볼 거야'라고 말하는,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미묘한 관계들은 10년이 지나도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을까요. <가끔 연락하던 애>는 다양한 인디 뮤지션들의 곡을 새롭게 커버한 10cm의 리메이크 앨범에 담겨있는 곡인데요. 결의 원곡 버전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와닿아서 종종 들었던 곡이에요. 매일매일 연락하거나, 아니면 연락이 뚝 끊겨서 슬퍼하거나 - 열정과다 사랑 노래에 지친 분들이라면, 미묘한 줄을 타는 느낌으로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공간커피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5길 68 1층

연희동 국화빵 -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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