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직 준비해요?" 

 "아니요, 요즘은 그냥 놀고 싶어요." 

 회사 선배랑 얼마 전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살면서 대놓고 놀고 싶다고 선언한 건 올해가 처음이지 않을까.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다, 죄책감 없이 시간 낭비하겠다 - 다짐과 합리화 사이에서 4월의 시작을 맞았습니다. 여러모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는 것 자체가 지치고 버겁게 느껴졌던 3월이었는데요. 일단은 되는 대로 살겠다, 안 하던 짓도 해보고 우당탕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정리되는 것들이 있겠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조급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 말자, 그게 3월 말에 내린 결론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가 좋은 시기가 있으면, 드라마가 좋은 시기도 있는 거고. 단편 소설집이 좋은 시기가 있으면, 대하 소설이 좋은 시기도 있는 거고.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좋은 시기가 있으면, 갑자기 뜬금없이배낭 여행을 떠나고 싶은 시기도 있는 거고. 만사가 다 즐겁고 행복한 시기가 있으면, 어떤 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시기도 있는 거고. 이런 시기가 있으면 저런 시기도 있겠구나, 종종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그런 시기들을 거쳐서도 또 그때와는 다른 내가 되겠지, 그리고 그런 시기들이 이런저런 흔적을 남겨놓겠지. 그러니까 뭐가 됐든 그렇게 나쁠 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요즘은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이런 이야기들을 종종 하는데요.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뜬금없이 바다를 가자거나, 콘서트를 가자거나 등등 즉석 제안에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하고요. 과거의 내가 열심히 쌓아놓은 것에 빚져서, 현재의 나는 좀 묻어가야겠다, 마음 가는 대로 슬렁슬렁 살아보려고요. 벚꽃 피고 살랑거리는 계절에 마음도 살랑거리는 걸까요? 저처럼 마음이 살랑살랑 슬렁슬렁 움직이는 분들이 계시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그리고 임수정. 네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말이 필요없는 영화. 최근 서촌에 위치한 위스키 시음실 '무용소'에서 열리는 더 테이블 팝업 전시에 다녀왔어요. 김종관 감독님 영화 속 테이블과 위스키를 테마로 채운 공간인데, 식당 예약할 때부터 '더 테이블', '아무도 없는 곳', '조제', '최악의 하루' 영화 속 4가지 테이블을 고를 수 있어서 설레더라고요. 영화 속 등장한 위스키를 마시고, 영화 속 소품들을 구경하고, 실제 영화 콘티북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유효기간을 꽤 길게 연장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4~5년 전 좋아했던 영화 속 장면이 여전히 좋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기억의 장면들이 겹쳐 보인다는 게 재밌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그래서 볼 때마다 흥미롭지만, 볼 때마다 다른 기억이 겹쳐 보일 것 같은 영화 <더 테이블>을 가져왔어요.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떳떳하게 카페 옆자리 대화를 엿듣는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제 유명 배우가 된 그녀와 그 사실을 과시하고 싶은 전남친과의 대화, 결혼 사기로 만난 가짜 모녀의 대화 등등. 4명의 배우별로 4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기도 편할 거예요🍰 카페 옆자리 대화 엿듣는 걸 좋아하신다면 분명 재밌게 보실 거랍니다! 

 Q.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나는 이야기를 짓는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런데 어떤 관계, 어떤 마음을 궁금해하는 탐구심은 있어요. 우리는 왜 상처받고 어떻게 그 상처를 이겨내는지, 우리는 어떤 순간에 행복하고 어떤 순간에 절망하는지. 그렇게 탐구하다 보면 거기에 부합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중략) 사실 그게 무슨 스토리예요. 그냥 그 사람의 마음의 경로지. 장황한 이야기가 아니라 명징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죠. 탐구하면 할수록 예뻐요, 그 마음이. 그렇게 본다면 나는 이야기꾼은 아니에요. 재벌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는 거 보면서 막 감탄해요. 엄청난 이야기꾼들이구나 하면서. (웃음) 나는 사라져가거나 빛을 잃어가는 것들에 현미경을 대고 그 순간을 자꾸만 보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때 영화 동아리를 했는데요. 뒤늦게 들어간 바람에, 촬영/편집 등 다른 자리는 다 차고 남아있던 시나리오를 맡았던 기억이 있어요. 사실 그때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 당시 참고하겠다며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을 읽었는데요. 세상에, 대본집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이런 대사를 쓰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때도 어렴풋이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저는 마음의 경로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내 마음을 나조차도 잘 모르겠을 때,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타인의 마음은 더 모르겠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할 때. 그럴 때마다 가만히 마음의 경로를 들여다보는 드라마들을 꼭 봤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푹 빠져들어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이야기꾼 vs. 결국 이해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꾼 - 둘 중 하나의 능력을 준다면 무엇을 택할까. 아직까지는 후자가 좀 더 탐나는 것 같긴 한데, 여러분이라면 어떤 걸 고르고 싶으신가요? 

 낯선 나라의 언어를 들을 때면, 종종 설레는 기분이 들어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표정과 어조를 들으면서 이런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재미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설렘이 극대화된 스텔라장의 프랑스어 곡을 가져왔어요. 영화를 보면 꼭 그런 장면들이 나오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 그 나라 말 알려달라고 하면, 전혀 일상 회화와 관련없는 말 한 마디를 흘리고 가는 것. 무슨 뜻인지도 안 알려주고, 나중에 시간이 한참 흘러서 우연히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는 뻔한 장면들. 현실적으로 주변인이 그런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로맨틱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요. 이런 목소리로 이런 멜로디를 흥얼거린다면,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될 것만 같아요. 요즘 같이 설레는 날씨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게 분명해요🍰

구복만두 - 서울 용산구 두텁바위로 7

서울집시 - 서울 종로구 서순라길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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