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부터 시 쓰기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시를 자주 읽는 편은 아닌데, 오히려 혼자라면 접근하지 않을 장르 같아서 도전해봤는데요. 첫 모임 과제로 일주일 동안 매일매일 일기 쓰기를 받았어요. 짧게라도 매일매일 써야지, 생각했는데 월요일 하루만 제 날짜에 쓰고 토요일에 벼락치기하듯 6개의 일기를 썼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수줍게 일기를 공유하고, 일주일 동안 어떤 부분이 반복되고 어떤 부분이 새로웠는지 대화를 나눴는데요. '재밌게 사는 것 같다', '매일을 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속으로 함박미소를 짓는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재밌게 살지? 요즘 재미가 없어, 늘 고민하며 지냈는데요. 매일 일기를 쓰며 뜯어보니 매일 소소하게 즐거운 순간들이 많더라고요. 그 일부를 공유해볼게요. 

 [08/05 (월) 점신 100점 데이]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월요일. 출근이 하기 싫어서 점신을 봤다. 믿는 건 아니지만 그냥 좋으면 좋은 대로 좋고, 나쁘면 나쁜 대로 위안이 되더라. 오늘 하루가 잘 안 풀리면 그냥 운세가 나빠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운수 좋은 날이 있겠지,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 그런데 처음으로 보는 100점이 나왔다. 도대체 100점은 어떤 하루인 거야? 출근하기 싫은 하루였는데 기대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가 50분 남은 이 시점에서, 솔직히 100점을 주고 싶은 하루는 아니었다. 간격이 긴 신호등 2개가 타이밍 좋게 초록불로 바뀌었고, 연인이 생긴 팀원에게 공짜 커피를 얻어먹었고,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기념으로 함께한 동료가 단체 선물을 돌렸다. 소소한 행복이 잇따랐지만 자잘한 짜증도 잇따르는 하루였다. 그래, 회사를 다니면서 자잘한 짜증은 디폴트인데 소소한 행복이라도 있었던 게 어디야!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을 텐데, 점신이 100점이라고 굳이 행복을 어떻게든 찾아보려는 게 우습기도 했다.

 [08/09 (금) 결혼식 플레이리스트 정하기]

 동기 언니와 퇴근하고 망원을 갔다. 네가 기력이 부족하면 가까운 용산을 가고, 기력이 남아있으면 망원을 가자고 말해주는 사람. 기력을 체크해서 약속 장소를 정하는 마음이 다정했다. 정신없이 떠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는데,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결혼식 플레이리스트를 정하자는 이야기였다. 언니가 신부 입장곡, 신랑 입장곡, 엔딩곡을 주말 동안 고르라고 미션을 줬다. 특히 입장곡은 전주가 길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뭐라고 집에 와서 음악을 듣다 보니 진지하게 몰입하게 되더라. 엔딩곡으로는 ‘Citizens! – True Romance’를 틀고 싶었는데 막상 들어보니까 하이라이트까지 가는 구간이 꽤나 길더라. 하객 입장곡으로 변경하기로 마음먹었다. 노래 듣고 행복한 상상하다가 금방 잠들었던 금요일.    

 사주를 크게 믿지 않지만 점신을 보고, 결혼할 사람도 생각도 없지만 결혼식 플레이리스트를 정하고. 굳이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야? 싶은 일을 하면서 즐거웠던 한 주였습니다. 특히 결혼식 플레이리스트 정하기는 일단 노래를 듣다 보면 식장 분위기가 그려지면서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어렵지 않으면서 적당히 나를 표현하는 곡이 뭐가 있을까, 전주도 아름답고 가사도 의미있었으면 좋겠는데. 좋아하는 노래들을 줄줄이 탈락시키며 어렵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봤어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이 긴 분들이라면, 시간이 금방 흐르니 한번쯤 시도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무더운 이 계절에도 크고 작은 재미와 즐거움이 함께하는 한 주가 되시길🌿

Ps. <망고네 슈퍼>가 [슈퍼에서 배달 온 편지 한 통]이라는 제목으로 BE. LETTER에 소개되었답니다! 확인하고 얼마나 설레고 기쁜 마음이었는지! 소개해주신 BE.LETTER 팀 고맙습니다💞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영화 <미나리> 감독님이 만든 토네이도 재난 영화. 딱 이 한줄에서 출발한 호기심으로 영화 <트위스터스>를 보러 갔어요. 굳이 IMAX를 볼 생각은 없었는데, 퇴근하고 맞는 시간대가 그것뿐이라 툴툴거리며 IMAX로 봤는데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재난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지만, 재밌고 힙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996년작 <트위스터>의 속편이라 뻔하고 아는 맛이긴 하지만, 익숙한 파스타에 파슬리 대신 미나리 가루를 뿌린 기분이랄까요. 영화 <트위스터즈>는 토네이도에 맞서고, 토네이도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요. 토네이도를 소멸시킬 데이터를 얻기 위해 토네이도에 맞서는 사람들, 토네이도를 이용해 유명 인플루언서가 된 유튜버 등 24년 재난영화에 어울리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해요. 영화 <미나리>를 촬영했던 오클라호마가 배경이 된 작품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저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 적재적소에 쓰이는 컨트리 음악, 얄밉다가도 정이 가는 주인공 캐릭터까지 빠지게 된 영화였어요. 무엇을 만들든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했고요. 기회가 되신다면 4DX로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Q. 자신의 내면만큼 타인의 성향과 심정에 대해 골똘히 탐구하는 문장들을 따라가는 것이 김화진 소설을 읽는 기쁨 중 하나다. 바꿔 말하면 자의식에만 침잠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적인 환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 자기가 자기를 몰라서 괴로워하고 타인을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과정조차 결국은 다 자기가 좋아서 그러고 있는 거 아닐까. '내가 나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조차 그 안에 너무나 소중한 자기가 들어 있는 거라서. 그래도 다른 사람을 거울 삼고 싶다는 마음, 반사된 것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확실히 자폐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의 기원에서 찾자면... 내가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와서 그럴까? 어릴 때 학교에서 줄을 서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맞더라도 쟤한테 줄을 맞춰야 하나 생각하는 어린이였다. 그런 걸 고민하는 애와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애는 분명 다르겠지. 나는 말하자면 전자인 어린이로 태어나 안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혼종일 테고. 

 어릴 때 학교에서 줄을 서면 내가 맞더라도 쟤한테 줄을 맞춰야 하나? 고민했던 어린이였는데요. 그런 고민을 했던 시절을 잊고 살았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고민을 하는 아이와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애는 분명 다르겠다는 말이 와닿아서 가져온 인터뷰입니다. 여전히 저는 낯선 이에게 연락할 일이 생기면 메모장을 열어서 할 말을 정리한 다음에 보내고, 문제가 생기면 내 잘못이 없더라도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문제가 생긴 걸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속으로 수없이 고민하고 말을 꺼내는 사람인데요. 동시에 그렇게 고민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기원을 찾아가면 운동장에서 줄 서는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구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자와 후자 중 어떤 어린이였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더라고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어느 어린이에 속하셨는지, 그 어린이에서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스티키플로어 - 서울 중구 다산로 60 2층

귀여운 유령이 그려진 간판을 지나, '한 계단 오르면 건강 수명 40초 연장'이 쓰여진 계단을 오르면 도착하는 약수역 근처 2층의 브런치 카페. 아늑하고 편안한 의자, 햇살 드는 창문, 건강하고 맛있는 샌드위치까지, 단골 손님하고 싶은 조건을 다 충족한 카페. 

명란식당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22 1층

명란이 올라간 밥에 따뜻한 녹차를 부어먹는 오차즈케를 먹을 수 있는 경복궁역 근처의 작은 식당. 가게가 아담해서 혼밥하기도 좋고, 적은 인원이서 도란도란 대화하기도 좋은 분위기. 따뜻하고 정갈한, 나를 대접해주는 분위기의 한상차림을 원한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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