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기하 단독공연을 다녀왔습니다. 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신곡 '해' 음원 발매 관련하여 흥미로운 양파 실험 게시물 링크를 친구가 보내줬어요. 제가 이런 거 좋아할 것 같다면서요. 그 게시물은 정확히 제 취향이었고, 저는 뜬금없이 '장기하 단독공연 같이 가지 않을래?' 제안하게 됩니다. 너무나 흔쾌히 좋다고 해준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티켓팅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티켓을 배송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다녀왔어요. 스탠딩 공연을 가는 게 얼마 만인지! 같은 날에 결혼식도 있었던 터라 결혼식 + 스탠딩 공연 사이의 적절한 의상을 찾다가 실패하긴 했지만, 결혼식 복장으로도 충분히 신났던 공연이었어요. 

 20대 초반에 애정했던 곡들부터 최근 자주 들었던 신곡까지. 도입부만 들어도 익숙하게 좋아했던 곡들을 라이브로 들으면서 참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공연을 보고, 공연 끝나고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서 신기해하고, 치킨 난반에 하이볼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는데요. 공연을 같이 갈 사람을 구하는 과정부터 모든 게 다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우연과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꿈 같은 하루이지 않았나. 사실 예상치 못한 일들은 좋은 것보다 나쁜 게 많았던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일들로 행복했던 주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또 이 기억을 품고 지내다가, "아, 그때 어쩌다 그렇게 공연을 보게 됐지?" "이래서 그랬잖아!" "아 맞다... 그날 막 이런 일도 있었잖아!" 하고 언젠가 기억 조각을 맞추며 웃고 있겠죠. 

 공연에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그때 처음 노래를 만들 때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떼창할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고. 가장 재밌고 하고 싶은 일이 음악뿐인 건 여전했지만, 그걸 그렇게 본업으로 하며 살고 있을진 몰랐다고. 나는 이렇게 비슷비슷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어요. 나도 언젠가 오래 살고 볼 일이네, 하게 되는 날이 오려나. 하게 된다면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려나.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역시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 있으시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전 아직 잘 모르겠네요🍋

 이미 보실 분들은 다 봤을 것 같은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개별 사건으로 보면 '그럴 수 있지' 넘길 수 있는 별거 아닌 일들인데, 그 소소하게 짜증나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게 현대 사회 아닐까요. 그래서 이게 이렇게 분노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는데요. 그냥 다 때려치고 때려부수고 도망가고 싶다, 속으로 화를 삭힌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분명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시리즈입니다. 크고 작은 일 뭐 하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와중에, 슈퍼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도망가는 고급 SUV. 도무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격렬한 추격전을 펼치면서 드라마는 시작되는데요. 멈출 수 없는 분노로 얽히고 설킨 관계를 다룬 시리즈로, 강렬한 오프닝 + 엔딩 크레딧과 가장 잘 어울리는 최고의 선곡만으로도 볼 가치가 충분하더라고요. 보면서 매 회차 제목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텍스트와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온 제목들이더라고요. 이렇게 디테일 하나하나 놓치지 않은 작품..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봐주세요🍰

 Q. 좋은 기억을 찾는 좋은 질문은 무엇인가. 

= 상대방을 향한 몰입 그 자체, 끝없는 경탄이다.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몰입하다 보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상대방이 했던 말의 한 마디만 그대로 따라해도 대화는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이다. 반드시 어떠한 대답을 들어야 한다는 안절부절이 없어야 가능하다. 경험에 의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탄이 있다면, 상대는 꺼내지 않은 질문에도 대답하게 되어 있다. 

 시대가 변해도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어떤 인물을 인터뷰하더라도 흥미로운 인터뷰를 완성하는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김지수 기자님의 인터뷰를 가져왔어요. 인터뷰 질문을 아무리 열심히 준비한다 하더라도, 사실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인터뷰가 늘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만은 없을 텐데요. 오히려 좋은 질문을 하는 방법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질문을 유도하는 게 아니라, 안절부절하지 않고 상대에게 몰입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어요. 굳이 인터뷰를 직업으로 가진 이가 아니더라도, 사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건 일상의 일부잖아요. 내 눈앞에 있는 상대가 누구든 몰입하고 경탄하는 것. 매일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고 재미없다 생각하기 전에, 내가 눈앞에 있는 상대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건 어디를 가냐가 아니라, 어느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지금 이런 제목의 노래가 발매된다면 '악! 이건 또 무슨 감성이지!' 하고 도망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억지로 어떻게든 매운맛을 극대화한 음식처럼, '야! 쓴맛 좀 봐봐라!' 하고 어떻게든 지독하게 만들어낸 쓴맛일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왜 80년대 노래 제목이라고 하면, 어떻게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건지. 아무리 쓰다고 경고해도 어쩐지 맛보고 싶은 오묘한 쓴맛처럼 느껴지는 건지. 아무리 지금 따라하려고 애써도 가질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건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저에겐 '김창완 아저씨'라는 친근한 호칭이 더 익숙한데, 이 노래의 첫 가사는 '내게 사랑은 너무 써 / 아직 전 어리거든요'로 시작해요. 누군가를 맘속으로 깊이 좋아하면서도, 어쩐지 머뭇거리고 쓸데없는 소리만 하다가 돌아오는 집 앞 골목길에 깔릴 것만 같은 노래예요. 쓰다고 말하긴 하지만, 어쩐지 에스프레소보다는 이미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메리카노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할까. 밍밍해진 아메리카노 마시면서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터방내 - 서울 동작구 흑석로 101-7

호우주의보 - 서울 용산구 소월로40길 85 1-2층

'비 오는 날의 커피는 왜 맛있을까?' 궁금증에서 출발한 1년 내내 비가 오는 경리단길의 카페. 40분마다 건물에서 비가 떨어져서, 우산 쓰고 사진 찍는 재미가 있는 곳. 컨셉이 확실한 만큼 '클라우디데이', '써니데이' 등 그에 걸맞는 메뉴를 골라먹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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