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작년 이맘때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들춰보는데요. 작년 이때쯤 저는 <나의 해방일지>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어쩐지 <나의 해방일지>는 늘어진 대낮에 몰아보는 것보다, 치이고 지친 하루 끝 이불 속에 폭 들어가 보는 게 좋았어요. 이불 속에서 구씨와 미정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아서, 이 위로를 받으려고 이 하루를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나 보다, 종종 생각했고요. 퇴근하고 가서 빨리 봐야지! 하는 마음에 주말 출근하는 것마저도 즐거웠을 정도였어요. '소몰이하듯이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하는 미정의 마음을,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라고 말하는 미정의 대사를 자주 생각했던 여름이었습니다. 

 그때도 이 시기가 아니면 이 드라마를 이렇게나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썼던 일기의 제목은 '굽이굽이 곡절'로 시작하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늘 굽이굽이 곡절을 넘고 있었구나, 소몰이하듯 나를 끌며 버티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지금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 시기를 잘 버텨서 또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구나. 새로운 곡절이 찾아와서 문제지만, 그것도 어떻게든 방법을 잘 찾겠지. 대단한 방법을 찾는 게 어려우면, 이렇게 좋아하는 이야기들에 기대서 흘려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구나. 그렇지만 한동안은 <나의 해방일지>를 대체할 만큼 좋은 드라마를 만나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남의 일기를 엿보고 싶은 건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주로 슬프고 답답할 때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고, 좋을 땐 휴대폰으로 가끔씩 메모하는 편인데요. 혹은 영수증이나 잡히는 종이에 끄적거려서 좋은 순간의 메모는 자주 잃어버립니다. 결국 차곡차곡 쌓이는 건 엉망진창인 제목의 일기들이 많은데, 그게 또 지나고 보면 위로가 된다는 게 신기하죠. 그리고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풀려서 일기의 끝에는 '어쨌든 구씨 미정이 재회를 했다고 하니 씻고 와서 구씨 미정을 보러 가야지. 그들의 다정함을 보면서 또 나는 일주일을 버텨야지' 같은 긍정의 혼잣말들을 남겨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게 아마 글쓰기의 순기능이겠죠. 글과 비교적 멀어진 요즘을 보냈는데, 여름엔 더우니 실내에서 책 읽고 글쓰는 샌님 생활을 좀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안 지켜지긴 하던데) 가장 최근에 쓴 일기 제목과 작년 이맘때쯤 쓴 일기 제목을 비교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흥미로운 제목이 있다면 저한테도 공유해주세요🧀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잠시 끊었던 일드를 다시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마침 예상 별점이 높은 신작이 있어 별 망설임없이 보기 시작했는데요. <브러쉬 업 라이프>는 30대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인생 n회차를 반복하는 이야기인데요. 새하얀 곳에서 눈을 떴더니, 저쪽 문으로 가면 과테말라 개미핥기로 환생한다고 알려주는 접수원이 있습니다. 그는 사는 동안 덕을 많이 쌓으면 원하는 동물 or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안내해주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개미핥기로는 못 살겠다 싶었던 주인공은, 모든 기억을 다시 갖고 인생을 리셋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환생이나 타임리프는 드라마에서 흔한 소재긴 하지만, 이렇게 소소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들을 바꿔나가는 드라마는 처음일 거라 확신합니다. 대단한 복수나 지구를 구하겠다는 사명감은 없지만, 소소하고 일상적이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오히려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는 선택들. 매 회차 다음 생엔 또 뭐로 환생하려나? 같이 궁금해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 추천드려요💏

 Q.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화려한 마무리 후 현재 MCU는 정체기에 빠졌다. 이번 영화가 향후 MCU의 10년을 이끌어가는 설정의 영화라고 밝힌 바 있는데, 동시에 이번 작품이 당신의 마지막 <가오갤>이다. 당신에게 <가오갤>은 어떤 의미인가. 

= (중략) 영화에서 뭔가 폭발을 한다면 그건 눈이 현란한 볼거리가 아니라 가슴을 뛰게 하는 드라마여야 한다. 이번 영화에서는 그 부분에 좀 더 집중했다. 그리고 매 순간 관객을 상상하며 찍었다. 왜냐하면 2014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을 본 관객에게 이 영화는 인생의 한 부분일 테니까. 10대 때 봤으면 20대가 됐을 테니 영화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좋겠다. 나는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 과학자도 정치인도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 영화가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 사랑, 포용, 용서, 끈끈한 마음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것이다. 부디 이 영화가 그런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길 소망한다. 

 <가오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영화관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벅차게 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이런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기분은 어떨까. 그런 마음으로 집에 오자마자 찾아봤던 인터뷰를 가져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에서는 인생 n회차를 반복하며 세상에 덕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해나가는데요. 영화 <가오갤>은 세상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과학자나 정치인도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화려한 영화의 규모가 탐났던 게 아니라, 이런 다정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가 탐났던 것 같아요. 귀여운 유머를 곳곳에 숨겨놓고, 적재적소에 맞는 음악을 곳곳에 배치해놓으면서, 어쩌면 뻔한 이야기라도 와닿을 수밖에 없게 하는 능력. 영화 <가오갤> 엔딩 크레딧을 보며 비슷한 벅참을 느끼신 분들이라면, 이 인터뷰도 같이 읽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제 또 드라이브를 가야 할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초록빛 잎사귀들과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적당히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창문 열어놓고 달릴 때 듣고 싶은 노래를 가져왔어요. 밴드 <공중그늘>은 함께 놀고 일은 각자 하던 친구들이, 더 늦기 전에 생산적으로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며 결성한 밴드라고 하더라고요. 본업과는 별개로, 숨통을 트이게 하는 사이드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 요즘입니다. 특히나 그걸 계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마음 맞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각자의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만든 음악이라 생각하면, 어쩐지 음악도 더 자유롭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네가 자꾸만 웃으니까 말을 멈출 수가 없네요'라는 가사가 참 좋았는데, 한적한 숲속 정자에서 하늘하늘하게 웃는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은 곡이에요. 상대가 웃으면 헛소리를 더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처럼 덥지 않고 걷기 딱 좋은 초여름밤에 듣는 걸 추천드려요👒

풍년닭도리탕 - 서울 중구 세종대로14길 17-5

남북통일 - 서울 마포구 동교로18길 37

만두전골은 언제 먹어도 깊숙한 곳으로부터 뜨뜻해지는 메뉴지만, 다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뿌듯하게 뜨끈해지는 합정역 근처 만두전골집. 30년 전통을 가진 곳으로, 위장에 여유가 있다면 고소한 녹두빈대떡까지 별미이니 함께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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