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이 되었습니다. 6월의 마지막 날엔 혼자 카페에 갔는데요. (사실 더워서 돌아다니기는 싫고 친구를 기다려야 해서 가게 되었어요) 식사 시간 직전인 카페는 한가로웠고, 바깥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호로록 마셨습니다. 간 김에 상반기 회고를 해야겠다, 야심차게 메모장과 볼펜도 챙겨갔건만. 저녁 뭐 먹을까? 근처 맛집을 검색하고, 커피 마시고 창밖 보면서 멍하니 있다 보니 친구가 올 시간이 다 되었더라고요. 거창한 회고는 못하겠고, 상반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하며 영수증 뒷면에 짧게 메모를 남겼습니다. 커피 마시면서 영수증 혹은 그날 받은 팜플렛에 그날, 그주의 기분을 적어두기. 2023년 상반기에 새로 생긴 습관인데요. 그렇게 숨 돌리는 오후들이 있어서 상반기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어제 썼던 영수증 뒷면 메모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그동안 썼던 영수증 메모들을 열심히 찾았는데, 절반도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가방이 난장판이라 막 치우거나 버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럴 줄 알고 어제 쓴 메모에도 '이 종이를 잃어버리더라도'라는 단서조항을 남긴 게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반기 미니 회고(?)를 하면서 하반기에도 여전히 노트 대신 영수증에 메모하는 오후를 종종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볍게 볼펜 하나만 챙겨서, 그날 받은 종이에 그날의 기분을 기록하는 것. 대신 하반기에는 이 영수증들을 모으는 노트나 파일을 장만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 오후들을 보냈던 소중한 카페들도 조만간 특집으로 소개해도 좋겠네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상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어떤 하반기를 보내고 싶으신지도 궁금하네요💞

 고등학교 때 잠깐 영화 동아리를 했는데, 그 당시 얼렁뚱땅 대본을 맡게 되었는데요. 시나리오는 어떻게 쓰는 거지? 싶어서 도서관에서 냅다 읽었던 게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집이었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드라마도 찾아보고,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돌려봤던 작품이었는데요. 최근 넷플릭스에 [그들이 사는 세상]이 업로드된 걸 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싶더라고요. 2008년 방영했던 드라마가 정확히 15년이 지나 업로드되다니. 뭘 모르고 봤을 때에도 그렇게 좋았는데, 10년이 훌쩍 지나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일까 싶어 보기 시작했는데요. 지금 봐도 여전히 재밌어서 가져왔습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은 방송국 드라마 PD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인데요. 15년이 지난 만큼 일하는 환경을 포함해 변한 것들이 많지만, 겉으로는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각자의 찌질함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통하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 한 편씩 까먹으며 볼 예정인데, 같이 보실래요? 

 회사 근처 단골 스타벅스 매장에 갔다. 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커피들이 보였다. 평소 늘 마시던 것들. 한 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단정한 차림을 한 직원 앞에 섰다. 그가 내게 물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직원은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했다. 이내 능숙한 추천이 이어졌다. 

 "아, 그걸로 주문할게요!" 

 메뉴 이름은 비밀 (음료 개발한 분이 상처받을 수 있으므로). 설명하자면, 에스프레소와 흑당과 시나몬의 다소 낯선 조합이었다. "시나몬 괜찮으시겠어요?" 주문할 때 들린 직원 말이 조금 불안했지만, 별수 없다. 이미 결제는 끝났다. 

 신메뉴 도전을 좋아합니다. 편의점에 가면 신상 아이스크림, 신상 과자 구매하는 게 취미고, 내키는 대로 버스 타고 새로운 동네 탐방도 좋아합니다. "이런 데는 어떻게 알았어?" 하는 곳들은 거의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발견한 곳들이에요.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거 말고, 유명하고 인기 있는 것 말고, 알고리즘 끄고 지도 앱 끄고 베스트셀러 피하고 최대한 나만의 선택으로 하루를 체험한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일단 첫 도전은 스타벅스에서 가장 인기 없는 메뉴를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사장님께 "뭐가 제일 맛있어요?" 같은 질문도 거의 안 하는 편이라, "뭐가 제일 인기 없어요?"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질문이었어요. 제일 인기 없는 메뉴 주문하고, 음악 앱에서 새로 나온 모든 음악을 들어보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지나 ㄱ-ㅎ 적힌 벽면에서 책을 고르고, 알고리즘 꺼진 유튜브를 보고, 초등학생이 추천해준 동네 떡볶이집을 가는 하루. 작은 도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일상이 알고리즘 추천 속에 있다 보니 신선하게 다가왔던 도전. 전문을 다 읽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일찍 퇴근하고 충동 쇼핑을 떠났던 저녁, 마침 기대했던 새 앨범이 나와 들으면서 갔어요. 한적한 버스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골라듣는데, 그냥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이찬혁비디오'는 AKMU 이찬혁의 또다른 프로젝트 그룹인데요. 이번 앨범은 신봉선, 고아성, 이세영, 임시완, 곽윤기 등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분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는데요. 늘 취향을 공개해왔듯이, 저는 정직하고 담백한 목소리를 정말 좋아해요. 노래가 직업인 분들도 있지만, 노래가 직업이 아닌 분들도 함께해서 그 사람만의 정직한 감성이 그대로 잘 살아있는 앨범. 적당히 끈적거리는 여름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들으면 참 좋겠다 생각한 앨범이라 전곡 플레이리스트를 가져왔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곡은 머물고 싶은 순간 (Vocal. 고아성), 공항 가는 길 (Vocal. 이세영) 두 곡을 추천드립니다. 여름에 더워서 머리를 가볍게 자르고, 산뜻한 원피스를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앨범이에요. 더위엔 음악으로 치유합시다🌿

펠트커피 청계천점 - 서울 중구 청계천로 14

밖이 내다보이는 큰 창, 극장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붉은 커튼이 인상적인 광화문 근처 카페. 청계천이 바로 앞에 있어 테이크아웃해 산책하기도, 가만히 앉아 푸른 나무들을 바라보기에도 좋은 곳. 

카레모토 - 서울 영등포구 양평로22바길 3 1층 101호

북해도식 스프카레를 선보이는 선유도 근처 신상 식당. 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작은 가게로 웨이팅도 종종 생기지만, 스프카레의 따스함은 물론 후식으로 요구르트까지 챙겨주는 센스도 가득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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