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종종 남들의 수다를 봅니다. 빈틈없이 웃긴 예능 요약본을 보고 싶은 날이 있고, 어느 순간 몰입해서 딴 생각을 할 수 없는 드라마를 보고 싶은 날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헛소리에 낄낄대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싶은 날이 있죠. 퇴근하면 70%의 확률로 친한 사람들끼리 수다 떠는 유튜브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늦게 퇴근한 월요일 저녁, 장기하 x 카더가든 x 침착맨의 조합으로 1시간 18분 편집된 수다를 실컷 보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재밌고 흥미롭고 같이 깔깔댔지만, 현실에서는 수다가 사라졌는데 이렇게 랜선 수다만 구경하는 일상이라니. 어딘가 이상하네.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일하지만, 사실 토막 대화 및 원치 않는 스몰토크를 빼고 나면 얼마나 남는 게 있을까요. 제대로 된 수다를 떤 게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미있는 '대화'가 그리운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과 편하게 나누는 '수다'가 그리웠어요. 가장 편하고 가장 나답게, 분위기를 띄울 필요도 없고 어색함을 깰 필요도 없고, 억지로 시간을 채워야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시간이 이렇게 됐나? 몇 시간을 훌쩍 보낸 뒤 다음 약속을 기약하게 되는 수다. 사실 퇴근하고 나면 누구랑 수다 떨 기운도 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지만, 가벼운 야식을 먹으며 누군가의 랜선 수다를 보며 낄낄대는 게 전부지만. 사실 그런 일상도 나름 행복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어제는 문득 랜선이 아닌 현실 수다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에서 야식 먹으며 엿보는 랜선 수다가 스쳐가는 행복이라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현실 수다는 손에 잡히는 행복 정도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사실 요즘은 덥고 습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쾌적함을 유지할까 말까 한 날씨잖아요. 그래서 덜 돌아다니고, 약속도 덜 잡고, 유튜브 보다 스르륵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는데요. 이 이야기를 나누며 재빠르게 마라샹궈 약속을 잡았습니다. 좀만 움직여도 기가 빨리는 여름 보양식은 역시 마라샹궈에 맥주 아니겠어요? 사실 저는 삼계탕이나 백숙류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요즘은 시원한 데에 앉아서 백숙 먹는 것도 괜찮은 피서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누룽지백숙, 닭한마리 칼국수 등 유사 음식 맛집을 열심히 찾고 있어요. 이게 나이가 드는 건가, 싶기도 한데요. 비도 쏟아지고, 습하고 더운 여름을 다들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랜선 수다와 현실 수다의 비율을 적당히 섞어서, 지치지 않는 여름을 보내고 계시기를 응원할게요🌿

 어느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데 정말 회사가 가기 싫더라고요. 가기 싫어도 어쩌겠어요, 가야지. 대신 냅다 그날 저녁 영화를 충동예매했습니다. 칼퇴해야 갈 수 있는 스케줄로 예매하고, 오늘은 반드시 칼퇴해야지! 다짐하면서요.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입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문라이즈 킹덤> 등 색감 천재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이고, 스칼렛 요한슨, 톰 행크스, 마고 로비 등 화려한 캐스팅이 돋보이기도 하죠. 이번 영화는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가상의 도시에 모인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게 고립되면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담고 있어요. 연극, 그리고 연극 밖 현실을 넘나들며 극중극 형식으로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펼치는데요. 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지금의 저에게 필요했던 말처럼 느껴져서 좋았어요. 결국 삶이란 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시트콤 같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인데요. 누가 내 삶의 정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고민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는 걸 추천드려요🌿

 이상했다. 바뀐 건 단순히 내 중얼거림에 맞장구치거나 함께 중얼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뿐인데, 그것이 왜 감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그 차이가 가리키는 건 하나다. 어떤 감상에는 그것을 나눌 목소리가 필요하다. 부모님 세대에는 텔레비전이 있는 가구가 많이 없어서, 인기 있는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집의 앞마당에 모여 함께 드라마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으고, 또 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화제가 되는 콘텐츠는 공동의 화제가 된다. 나는 일정한 시간 동안 우리가 같은 걸 보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그로부터 도출된 각기 다른 감상을 공유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OTT 사이트에 빠른 다시 보기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굳이 시간을 맞춰 텔레비전을 켜는 까닭이다. 

 '꽃보다 남자'가 세상을 지배할 때, 10대 시절을 보냈어요. 학교 가면 F4 중 누가 제일 좋냐, 어제 그 장면 봤냐 등등 TV를 안 보면 대화에 낄 수 없는 시대였는데요. 그 당시엔 드라마뿐 아니라, 인기가요, 뮤직뱅크 등 인기 있는 아이돌의 무대도 본방사수하고, 항상 그 다음날 대화 소재가 되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스몰토크 주제를 찾아 헤매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제 한 TV 방송이 대화 소재가 되는 건 드문 일이 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와 함께 봐야 재밌는 콘텐츠들이 분명 존재하죠. 이 글에도 주말 드라마, 연애 리얼리티쇼, 호러 영화는 함께 봐야 유독 재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혼자 보면 아예 안 보거나 요약본으로 스킵하며 보던 콘텐츠들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얹으면 어쩜 그렇게 재밌어지는지! 저 상황에서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 (막장 드라마), 설레는 멘트가 나오면 냅다 소리지르기 (연애 리얼리티), 귀신 나오는 거 다 지나갔어? 눈 가리고 보는 친구 껴서 보기 (호러 영화) 등. 꼭 중요한 장면에서 할 말 하는 친구들 때문에 "뭐라고 했어?"를 반복하며 봐야 할 때도 많지만, 그럴 때에도 10초 뒤로 가기를 누를 수 없는 본방의 매력. 함께 보는 즐거움을 아시는 분들이라면, 분명히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여름엔 여름 나라 노래를 들어야죠🌿 처음 들어봤는데 '뭐지? 너무 좋은데?' 하면서 당장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게 되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는데요. 태국 방콕 출신 밴드 HYBS의 노래로, 노을 지는 휴양지의 바닷가에서 맥주 한 잔 마실 때 이런 노래가 흘러나오면 너무 행복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특히 이 곡 'Run Away'의 뮤직비디오는 한국에서 촬영했는데, 아무 정보 없이 클릭했다가 '은행골', '1박2일 포차' 같은 익숙한 간판들이 보여서 당황했답니다. 사는 게 힘들고 지치고 뭐 하나 쉽게 가는 게 없는 것 같은 날이 있으면, '뭐지? 이렇게 별거 아닌 거에 행복해질 수 있나?' 싶은 날들도 있죠. 사실 요즘은 너무나 손쉽게 기차 표 끊고 비행기 표 끊고, 내킨다면 언제든 달려나가서 어디든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 노래의 한줄 소개에도 'When things get tough, and you feel like 💩 just remember…… you can run away 🌬💃'라고 흥겹게 적혀 있는데요.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거나, 이 복잡한 세상을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날이라면 망설임없이 HYBS의 노래를 추천할게요! 

가고 싶은 선리네-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53 1층

유럽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정성스러운 한상을 선물받은 기분이 드는, 동서양 가정식을 선보이는 연희동의 작은 식당. 조개크림스튜, 라구카레가 대표 메뉴인데, 빈티지 컵과 식기에 정성스럽게 담긴 요리를 먹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간다. 준비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니, 미리 예약하고 여유로운 날에 가는 것을 추천. 

커피앤시가렛 - 서울 중구 서소문로 116 유원빌딩17층 1706호

넓은 통창, 건물 높이 위치해 있어 서울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뷰로 사랑받는 시청역 근처 카페. 통창 근처 자리는 평일에도 늘 잡기 쉽지 않지만, 편안한 음악과 편안한 커피, 편안한 뷰의 조합으로 시간 보내기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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