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관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다시 봤어요. 사실 비포 시리즈를 좋아하긴 하지만, 인생 영화로 고를 만큼 열렬히 사랑하는 편은 아닌데요. 또 세상에 콘텐츠는 너무나 많고 시간은 한정적이니,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본 영화는 또 보지 않는다 주의에 가까운데요. 우연히 시간이 잘 맞기도 했고, 오랜만에 유럽 여행하는 기분으로 대리만족하면서 봐야겠다! 하고 영화관으로 향하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보니 몇몇 장소에서의 명장면만 기억나는 정도였고, 기억나는 장소의 실루엣이 나올 때마다 '앗! 드디어 그 장면이다!' 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명장면인 걸 알고 봤는데도 다시 보니 여전히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사람들이 문득 부러워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겠지만,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사랑에 빠져 하루 동안 여행을 함께하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사랑에 빠진다'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는 걸 제외한다면, 별다른 사건 없이 러닝 타임 내내 두 사람의 대화만 진행되는데요. 1995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에 봐도 대화가 하나도 촌스럽지 않다는 게 가장 놀라웠어요. 앞 관객 분이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것보다 집에서 보는 게 더 좋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보면서 그 대화들에 끼어들면 훨씬 재밌는 시청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랑, 인생 철학, 인간 관계, 죽음 등 평소에 추상적인 대화를 나눌 일은 많지 않은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에 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대화를 나눴기에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인 게 아닐까.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끊임없이 흥미로운 일들이 생기는데요. 손금 봐주는 할머니, 단어를 고르면 시 써주는 시인, 출산 춤을 추는 댄서 등 거리를 걷다 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대화 소재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만약 이 영화 배경이 한국이었으면 어땠을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밤새 대화를 나눈다면 어디를 가게 될까. 길거리에서 어떤 대화 소재를 줍게 될까. 한국에서 소개팅을 여러 번 해봤지만, 거리에서 흥미로운 대화 소재를 찾았던 경험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요. (제시와 셀린처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던 게 문제일까요...?) 이런 코스로 간다면 하루종일 대화해도 마냥 재밌을 것 같다! 하는 곳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옆집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성과 '이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신선한 상상력이 공존하다니. 이옥섭 감독님의 작품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구교환, 심달기 배우와 연기천재 이겨울 (강아지) 배우가 등장하는 단편영화 세 마리(2018)가 유튜브에 공개되어 가져왔어요. 미세먼지가 심해서 집에만 있었다고 한 남자친구가 나 몰래 외출을 한 것 같은 '달기'. 그날의 진실은 함께 집에 있었던 강아지 '겨울'만 알고 있는데요. 남자친구를 짝사랑하는 '달기'는 그날의 진실이 궁금하고, 강아지 '겨울'과 대화하기 위해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부르게 되면서 영화가 진행됩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징그러운 짝사랑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딱 붙여놓은 영화. 우리는 늘 상대의 진심이 알고 싶고, 한편으론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잖아요. 결국 전하고 싶고 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볼 만한 단편 영화. 30분만 투자해보세요🍋

 Q. 실패라는 단어의 정의를 새롭게 쓴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실패를 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실패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인생에서 쓸데없는 걸 걸러낼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백 퍼센트의 실패란 없어요. 그리고 이걸 알게 됐죠. 게임과 인생을 헷갈리지 말자. 

Q. 무슨 뜻인가요. 

= 대입? 사업? 이런 건 게임이에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와의 관계, 이건 게임이 아니라 인생이죠. 게임에서 실패한 걸 인생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해져요. 그 둘을 착각하면 안 돼요. 내가 실패했던 건 다 게임에서였어요. 게임에서 실패한 순간에도 전 인생에선 괜찮았거든요. 살 만했고 감사했어요. 

 수험생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중 꼭 빠지지 않는 게 있죠. 인생을 길게 놓고 봤을 때, 사실 실패한다고 해서 진짜 별 일 아니다. 그땐 그게 세상의 전부 같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수험생에겐 참 와닿지 않는 조언일 것 같은데, 또 지나고 나니 그것만큼 맞는 말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스타 영어회화 강사였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하는 등 실패를 반복했던 문단열 대표의 인터뷰를 가져왔는데요. 실패한다 해서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건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게임과 인생을 헷갈리지 말자'는 말이 와닿았어요. 이런 인터뷰를 읽을 때마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건 뭘까,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갈수록 실패하는게 두렵지만, '게임과 인생을 헷갈리지 말자' 마인드가 있다면 조금은 용감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시도해볼 용기가 필요한 분들에게, 전문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오프닝에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 이야기를 꺼냈으니, 마지막도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곡을 가져왔어요. 제시와 셀린이 레코드 샵의 작은 청음실에서 함께 듣던 곡. 두 사람이 어떤 대화도 주고받지 않은 채, 서로를 몰래 쳐다보는 그 눈빛이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죠. 그 장면 자체도 너무나 좋았지만, 그 장면에서 흐르는 곡이 너무 좋아서 나오자마자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둔 곡인데요. 특정 장면을 생각하고 만든 곡은 아니었는데, 어느날 내가 만든 노래가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장면에 삽입된다면? 그 장면이 20년이 넘게 흐르도록 사랑받는 명장면으로 남는다면? 영화와 음악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만들었지만,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다른 창작자를 만나는 기분은 어떨까. 대화가 많은 영화를 보고 나니, 그에 잇따르는 질문도 많아진 기분입니다. 여름 해질녘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할 때 듣는 걸 추천드려요! 

 🍋 경품 : 도서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 

 🍋 기간 : 2023년 8월 14일 ~ 8월 25일 

 🍋 발표:  2023년 8월 27일 

 🍋 참여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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