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내가 열심히 살아서, 현재의 내가 따라가기 좀 힘들다.' 

 저는 늘 적당히 열심히 사는 인간입니다. 누워 있는 거 좋아하고 늘 '집에 가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 휘적휘적 사는 것 같지만, 해야 할 건 다 하고 뭘 하면 더 재밌을지 늘 궁리하는 편이거든요. 현재는 뭘 하면 재밌을지 상상하는 것도 에너지가 들어서, 상상조차도 안 하는 날도 많지만요. 그래서 우연히 과거에 했던 것들을 발견하면 '헥! 이걸 무슨 에너지로 한 거지?' 이런 의문을 품게 될 때가 많아요. 과거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무모하게 일단 시작하는 에너지도 있었다면, 사실 지금은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인가!' 할 일만으로도 벅찬 사람이 된 것 같아요.

 2019년, 단편만화 4주 클래스를 듣던 당시 썼던 기획안을 메모장에서 발견했어요. SNS에 해외의 맑은 하늘이 올라온다면, 한국의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 대신 땅 사진을 찍어보자! SNS에 올라오는 강아지, 고양이, 식물 집사일기 대신, 우리 집 앞 잡초일기를 써보자! 이런 식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싶었는데요. 그 당시 단편만화는 다른 내용으로 그리긴 했지만, 여전히 재밌는 상상이더라고요. 요즘 인생이 지칠 때면 '아, 빨리 잡초일기 연재해야겠다!' 생각하며 지내는데요. 막상 밖에서 돌아다닐 땐 또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잡초 찍을 생각을 못했어요. 잡초일기.. 언젠가 연재하고 만다.. 저의 첫번째 팔로워가 되어주실 분들을 기다립니다 저도 인생을 재미있게 살 방법을 탐구해오겠습니다🍋

 작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아티스트들이 공연하는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를 아시나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작고 소박한 사무실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게 매력인데요. 한국 버전인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가 처음으로 공개되어 가져왔어요. 8월 런칭 라인업으로 선우정아, 윤석철트리오, 권진아, BTS 뷔까지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데, 첫 게스트로는 김창완밴드가 출연했어요. 최근 영화 <밀수>의 강렬한 액션씬에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삽입되었을 때, 해당 장면과 너무나 탁월하게 어울리는 선곡이라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는데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포함해 '아리랑', '동화의 성', '너의 의미' 등 다양한 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요. 어떤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저 듣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평화로운 주말의 마무리로 보는 걸 적극 추천드려요! 

 호미씻이보다 마음을 빼앗긴 처서의 두 번째 풍습은 '포쇄'다. 볕에 쬘 포에, 볕에 말릴 쇄. 장마가 있는 여름을 지나는 동안 눅눅해진 책이나 옷을 모두 꺼내어 햇볕에 쬐고 바람에 말리던 일을 뜻한다. 고서를 만드는데 사용된 한지는 습기에 약해 썩거나 벌레 먹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책이나 옷을 보다 오래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라고. 주로 일 년 중 햇볕이 가장 좋은 시기에 정기적인 포쇄를 했다. 민가에서 옷, 책, 곡식 따위를 마당에 널어 습기를 말렸다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에서는 '포쇄별감'의 지휘 아래 실록을 말리는 것이 큰 행사였다. 여름내 눅눅해진 책과 옷을 가을볕과 바람에 말린다니. 필요에 의해 생긴 풍습이고 그것도 하나의 일이었을 테지만,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낭만으로 읽히고 만다. 

 요즘에도 종종 점심을 먹을 때면, "오늘이 입추래요!, 오늘이 처서래요!" "어쩐지 시원하더라!" 같은 대화를 주고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여름엔 '처서 매직은 없다'라는 기사를 자주 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절의 흐름을 실감할 때면 어김없이 절기가 들어맞곤 합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처서 관련 풍습을 다룬 글을 가져왔는데요. 여름 내 눅눅해진 책과 옷을 가을볕과 바람으로 말리다니. 저한테도 여름 내내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뽀송하게 말리자!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로 읽히더라고요. 비가 그치고 하늘이 아름다웠던 저녁, 날씨가 모처럼 덥지 않길래 근처 한강공원으로 향했는데요. 오랜만에 본 노을은 아름다웠고, 마침 버스킹하는 밴드는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서 해주더라고요. 계단에 앉아서 마냥 노을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던 그 풍경. 어쩐지 강 앞에 나무들마저 춤추는 것처럼 보였던 저녁. 가장 최근에 눅눅해진 마음을 말렸던 날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눅눅해진 마음을 어떻게 말리시나요? 

 앞서 언급했던 한강 공원에서 들었던 버스킹곡. 이영훈님의 원곡 버전도, <나의 해방일지>에 삽입되었던 곽진언님의 OST 버전도 둘다 좋아하는데요. 여전히 마음 한켠에 담아둔 구씨의 썸네일에 혹해서 곽진언 VER.으로 가져왔습니다.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라는 가사를 가장 좋아하는데, 한강에 내려앉는 여름 노을을 바라보면서 그 가사를 들으니까 더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여전히 <나의 해방일지>의 대사들을 종종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라고 말하던 미정이를. "여전히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는 거냐? 가보자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되받아치던 구씨를. 사는 게 왜 이렇게 쉽지 않냐고 무작정 투정부리고 싶을 때면, 문득 해방일지의 대사들이 위로가 되더라고요. 비슷한 마음으로 여름을 버티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오랜만에 같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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