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분 갑자기 안 좋아져서 슈탐 갔다올게." 

 친구랑 카톡을 하다가, 갑자기 내일 할 일이 떠올라서 기분이 안 좋아졌던 저녁. 처음 쓰는 신조어를 냅다 만들었지만, 단번에 '슈퍼 탐험? 잘 다녀와'라는 답이 도착했습니다. 원래 의도했던 건 '슈퍼 탐험'이 아니라 '슈퍼 탐방'이긴 했지만, 뭐 그 정도면 정답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대로 냅다 말을 줄이고 새로운 말을 만들어도 의미가 통하는 관계. 이 사람이 이 시간에 기분 전환하러 간다면 슈퍼가 틀림없겠군(이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대충 아무거나 말한 걸 수도 있지만), 그동안 나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관계. 그 관계의 편안함이 좋아서, 슈퍼 가는 길의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졌던 것 같아요. 

 평소 슈퍼나 편의점을 가는 걸 좋아합니다. 사실 요리는 거의 안 해먹는데요. 신상품 뭐 나왔는지 구경하고, 이거 해먹으면 맛있겠다 상상하는 게 얼마나 즐거운데요. 이 정도 배고플 때는 과자를 먹으면 좋을까, 삼각김밥을 먹을까, 아니면 간단한 샌드위치나 빵 같은 것? 맥주를 곁들일까, 아니면 하이볼? 그냥 간단하게 젤리나 주워 먹을까? 오늘은 특별하게 푸딩 도전? 일단 야식 종류를 고르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종류를 정하면 그 안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데에 또 시간이 걸려요. 하루종일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 결정하면 책임이 따르는 일들에 시달리다가, 이렇게 별거 아닌 일로 오래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한참 고민 끝에, 그날의 야식 메뉴를 양손 가득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고민이 싹 지워진달까요. 

 지난 금요일 밤, 늦게 퇴근하니까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나만 이렇게 금요일에 일할 수 없지, 육회와 연어를 배달시키고 슈퍼에 들렀습니다. 간편한 캔 하이볼을 사들고 지나치는 피자와 만두 가게의 향기에 정신을 빼앗기면서 길을 걸었습니다. 남은 기운이 0%라고 생각한 하루였는데, 집에 가서 편안한 옷 입고 맛있는 거 먹으니까 금방 행복해지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들이 꼭 슈퍼 앞 평상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시덥잖은 이야기도 하고, 진지한 대화도 나누잖아요. 그게 다 슈퍼가 주는 묘한 행복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던 밤이었습니다. 슈퍼에서 간단하게 뭐 사서 산책 가기 딱 좋은 요즘 날씨, 잘 즐기고 계신가요? 

 

 집밥 감성을 좋아합니다. 종종 집에 갈 때면 엄마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물어볼 때가 있는데요. 누군가를 생각하며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정성껏 요리를 하고, 잘 어울리는 플레이팅을 하는 것. 그게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드는 과정인지 알게 되었기에, 누군가를 위한 한상차림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그런 집밥 감성이 가득 담긴 유튜브 웹예능 <실비집>은 개그맨 남창희님이 게스트를 위한 한상을 차리는 과정을 담았는데요. '핑계고' 제작진을 포함해서 교사 부부, 응급실 의사, 영화 감독 등 다양한 직종의 게스트 분들이 등장하고, 게스트가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바탕으로 직접 요리하는 과정을 담았어요. 재료 손질부터 칼질, 보글보글 끓이고 볶는 과정이 흘러가는 동안, 게스트는 얼굴 대신 목소리만 출연해서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 <실비집>의 묘미인데요. '본격 잠 오는 요리 콘텐츠'를 표방하는 만큼 언제 틀어놔도 편안하게 볼 수 있어요. 무슨 일을 하든 다들 사는 건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고 자신만의 영역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콘텐츠로, '심야식당' 감성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적극 추천드려요!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다녀왔어요. 사실 부산까지 가면서 좀 지치기도 하고, '영화를 그 정도로 좋아하나?' 싶기도 했는데요. 영화의 전당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딱 마셨는데, 갑자기 너무 신나고 즐거워져서 '내가 이렇게 영화를 좋아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나치는 사람들이 부국제 목걸이를 매고 있고, 키링을 매고 다니고, 배낭과 영화 티켓을 들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내적 친밀감을 느꼈는데요. 이렇게나 넓고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고, 이렇게나 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기뻐하고 설레고 박수치는 곳. 영화가 끝나면 다같이 박수치던 그 순간이 좋아서, 아마 다음 해에도 또 부국제로 향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 선정된 감독님들의 인터뷰를 가져왔는데요. 집에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늘 누워서 밀린 콘텐츠 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하는 사람이라 특히 공감되는 부분이었어요. '집에 가서 뭐한다고 일찍 가?' '저와의 약속도 중요한데요.'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공감하실 거예요💞

 "이번에 새로 나온 앨범 들어봤어?" "응, 너무 좋아서 날아다녔어!"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은 게 참 오랜만이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음악을 곁들여 듣는 게 아니라, 누워서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온전히 음악만 들었던 경험도 오랜만이었고요. 그렇게 온 마음으로 즐겁게 들었던 밴드 '봉제인간'의 음악을 가져왔는데요. 이전에도 2023년 가장 라이브를 보고 싶은 밴드로 소개했을 정도로, 최근에 가장 좋아하고 빠져 있는 음악을 하는 팀이에요.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베이시스트 지윤해, 혁오의 기타리스트 임현제, 전 장기하와 얼굴들의 드러머 전일준 세 멤버가 결성한 팀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력한 목소리 + 심장을 뛰게 하는 사운드의 조합에 빠져 버렸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단독공연을 꼭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에 살포시 들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위의 버튼을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