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습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는데, 너무 덥지 않을까? 하는 핑계로 못 갔던 곳인데요.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낭만적인 슬로건을 바탕으로, 정동진 초등학교 운동장의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에요. 낮에는 정동진의 푸른 바다에서 놀다가, 해가 질 때쯤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를 보는 그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료 영화제로 열리는 덕분에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애기 손 잡고 온 엄마아빠,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연인들, 진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그 풍경이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당일치기로 놀러갔다 와서 영화제보다 바다 구경이 더 컸던 것 같지만, 다음엔 제가 꼭 숙소를 예약해서 12시반까지 지겹도록 영화도 보고 수다를 떠는 밤을 보내기로 다짐했습니다. 

 조용하게 파도 소리만 들리는 정동진역에 앉아서 썼던 일기의 일부를 보냅니다. 아직 무언가를 좋아해서 팔딱팔딱 뛰고 싶은 마음이 살아있고, 좋아서 너무 신나서 오래오래 말하고 싶은 마음이 살아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에겐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마음이 너무너무 중요하다는 것도요. 뭔가 최고의 순간을 말하는 건 늘 어렵지만, 지금까지 2025년 가장 행복했던 날을 고르자면 이날의 정동진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과 기회가 되신다면 여름의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가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언젠가 저랑 정동진에서 만나요🐬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지난주에 잠깐 소개해서 또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건 너무 신선한 조합이잖아? 해서 가져왔습니다. 전인권과 이센스가 같은 무대에서 대화하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그림이라 가져왔어요. [LIVE WIRE]는 한 아티스트가 보고 싶은 아티스트를 지목하고, 또 지목받은 아티스트가 다음 아티스트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꾸려지는 음악 프로그램인데요. 그 덕분에 홍보 이슈를 벗어난 아티스트들도 볼 수 있어서 반갑더라고요. 최근에 낸 곡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오랜만에 라이브를 볼 수 있는 무대들도 많고요. 이번 영상에서는 후배 이센스가 선배 전인권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요. "음악이 재미없었던 때도 있었나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시더라고요. 음악이 재미없었던 때는 없고, 항상 좋았다고요. "정상까지 와서 더 갈 데가 없다, 돈도 벌어봤고 다 재미없다, 그건 너무 건방진 이야기고. 정상에서 자세히 보니까 또 길이 한 5가지 정도 보이더라. 그게 내가 갈 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진짜 좋아하는 선배님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고, 진짜 40년 이상 음악을 한 선배니까 할 수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Writer's Block 라이브 영상 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저도 클립으로만 봤는데 이거 보내고 풀 영상으로 전체 회차를 봐야겠어요🔥

  

 Q. GV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 (중략)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작년 겨울에 기르던 강아지가 갑자기 자연사를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나 스스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심리적 방어벽을 쌓기 위해 만든 거기도 했다. 내 죽음은 상관이 없는데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솔직히 영화를 완성하고도 위로가 되지는 않더라. 그래도 그런 건 있었다. 우리 강아지는 화장을 해서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단지에 뼛가루로 남았다.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이 영화를 다 만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내가 '우리 강아지의 형태가 변했을 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그니까, 남아있는 게 있었다. 우리 강아지의 몸도 형태를 바꾸어 남아 있고 좋았던 기억도 남아 있고, 내 안에 많은 것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서 감정이 조금 진정되고 나니 내가 날 설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 누구나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때 한 번쯤 이 이야기를 떠올려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눈사람으로 변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동물로 변한다거나 (한때 유행했던 바퀴벌레 논쟁처럼) 사물로 변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제가 정동진에서 첫 상영작으로 본 영화 <얼음땡>은 엄마가 눈사람으로 변하는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딸은 눈사람이 된 엄마를 어떻게든 살려주기 위해서 냉장고에 넣고 보관하는데요. 엄마는 눈사람이 되었지만 눈동자가 있어서,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딸과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딸은 어떻게든 눈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별의별 방법을 다 찾아보지만, 하루종일 냉장고에 갇혀 있는 엄마는 자신을 녹여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이르는데요. 사랑하는 엄마가 나를 녹여달라고 부탁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정동진 첫날 가장 흥미로웠던 단편영화 감독님의 인터뷰를 가져왔습니다.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남겼던 조현철 배우의 수상 소감이 떠올랐어요. "죽음이라는 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상상하기도 싫어서 마냥 회피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게 있다'는 태도가 참 씩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남만큼이나 이별에 잘 대처하는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네요. 

기쁨이네 -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로6길 5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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