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엔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 가기 전날에도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설레지도 않고, 기대되지 않고, 너무나 일상적인 기분으로 새벽까지 밍기적거리다가 짐을 쌌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해본 것도 설레본 것도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나니 좋더라고요. 여행을 하는 내내 '와, 이거 진짜 오랜만이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하다 보니 그 말을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아서, 그럼 도대체 그동안 나는 뭘 하고 살았나 싶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오랜만에 해도 좋은 것들 사이에서 보낸 1박2일이었습니다. 

 바다가 어디 있지, 물었는데 골목길 코너를 돌자마자 건물 틈 사이로 보였던 바다. 젤라또 간판을 보자마자 '아! 너무 먹고 싶어!' 하면서 들어갔는데 영업 시간인데도 문이 닫혀서, 편의점 보석바를 먹으면서 봤던 밤바다. 회를 먹으면서 슬쩍슬쩍 보고 느꼈던 바닷바람. 전망 좋은 카페에 웨이팅 걸어놨는데, 나무 밑 평화로운 벤치 뷰가 더 좋아서 오래도록 봤던 바다.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순간순간 보였던 저 멀리의 바다. 어딜 가든 일상적으로 바다가 끼어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바다를 원없이 보고 왔습니다. 대놓고 펼쳐진 바다도 좋지만, 일상 틈새로 끼어든 바다는 오랜만이라 더 좋더라고요. 

 함께 간 친구도 크게 계획적이지 않고, 둘 다 결정을 잘 못 내리는 타입이라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간 여행이었는데요. 발길 닿는 대로 바다 보이는 쪽으로 걸어가고, 휴대폰 충전이 필요한 바람에 뜬금없이 카페 가서 빙수 먹고, 귀여운 외관에 반해 구경만 하자고 들어갔다가 와인 보틀 사서 나오고. 가기 전에 맛집도 열심히 찾아갔는데, 크게 소용이 없었던 게 더 좋았던 여행이었습니다. 그런 여행을 보내고 오니, 크게 설레지 않고 기대되지 않는 일상도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요. 편안함과 익숙함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여름은 뜨거운 계절이지만, 평양냉면처럼 적당히 슴슴한 정도로만 여름을 견디고 싶습니다. 아직 평냉의 매력에 심취하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평냉이 먹고 싶어지는 마무리네요. 저랑 평냉 드시러 가실 분? 🤚

 드라마 종영 후 뒷북인 것 같지만, 최근 이 드라마만큼 사랑했던 게 없어서 가져왔습니다. <나의 해방일지>는 '나를 추앙해요'라는 대사에서 하차한 사람과 하차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초반엔 무슨 맥락인지는 알겠는데, 굳이 '추앙'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을까? 싶었는데요. '추앙'이 가장 적확한 표현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저도 이 드라마를 '추앙'하게 된 것 같아요. <나의 해방일지>는 산포시의 기정, 창희, 미정 삼남매를 포함해 현실에 얽매인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방을 찾아가는 방법을 그렸는데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화 장면을 가져왔습니다. 나쁜 일들은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행복은 시간과 마음과 돈을 써가며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구나 생각하는 요즘이었는데요. '여전히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는' 미정을 보면서, 한 발 한 발 어렵게 가보자고 하는 구씨를 보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발 한발 어렵게, 기왕이면 하루 10분씩 채우기로 해요💗

  Q. 그건 노력이 필요한 일일까요? 

= 여전한 거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저한테 집중을 해야 하죠. 계속 제 취향을 존중해야 하고요. 다행히 저는 제 취향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는 질투도 나지 않고 부러움의 대상도 되지 않아요. 그래서 그냥 제가 재미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중략) 

Q. 재미있었어요. 

= 저는 늘 그런 식인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남들도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만약 '이런 걸 좋아하겠지' 하고 제가 억지로 뭘 하는 게 더 효과가 좋다고 해도, 저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거죠. 

 영화 <메기> 개봉 당시, 구교환 배우가 등장하는 GV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의 GV, 무대인사 예매는 갈수록 어려워지겠지, 그게 내 마지막 GV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슬퍼지더라고요. 영화, OTT, 드라마 등 여러 플랫폼에서 변화무쌍한 매력을 보여주지만, '여전한' 인터뷰가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 이제 스스로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저는 정반대에 있는 것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할 때가 있어요. 이건 어차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도,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가 잘 되면 '아, 나도 저런 걸 했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요. 휘둘리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은 요즘이었는데요. 세상에 별의별 게 많아도,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돋보이는 인터뷰. 함께 보시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플레이리스트를 쭉 틀어놓고 있다가 오랜만에 듣게 된 곡. 돌아가면 여전한 현실의 문제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 노래 첫 소절을 듣자마자 '아,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말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사실 어떻게 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그냥 시간이 흐르고 버티는 수밖에 방법이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야, 그냥 생각하지 마.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 하고 말했던 적이 종종 있었는데요. 듣고 싶어서 찾아 들은 노래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듣게 된 노래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기분이었어요. 무언가를 더 하기보다는 그냥 깊이 생각하지 마, 편안하게 건네는 말이 필요하셨던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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