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영화도, 드라마도 잘 보지 않습니다. 한창 열심히 보던 <스물하나 스물다섯>은 이진과 희도가 본격 연애를 시작한 회차에서 그만뒀고, 노희경 작가님의 신작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던 <우리들의 블루스>는 한수가 은희에게 목포 여행을 제안한 시점에서 멈춰 있습니다. 분명 시작하면 좋아할 게 뻔한데 미루고 미루다 못 본 '나의 아저씨' 박해영 작가님의 신작 <나의 해방일지>도 그 유명한 대사 '날 추앙해요'를 아직 못 본 채로 멈춰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새해가 지나고 겨우 한 편을 봤습니다. 

 영화/드라마를 보는 건 여가생활인데, 왜 이렇게 보기가 어려운 걸까. 자꾸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몰입하기가 어려운 걸까. 결국 영화/드라마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그 가상 속 인물들에게 마음을 주는 것마저 버거운 걸까. 아니면 시간에 쫓기거나 피곤한 상태로 보면 좋은 이야기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까봐 그런 걸까. 갈등을 헤쳐나가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이야기들을 분명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젠 왜 갈등 상황이 나올 것 같으면 드라마를 그만두고 싶어질까. 

 그런 마음으로 유튜브 세계를 헤매거나, 자기 전에 짧은 미드만 보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만큼 딱 그 정도의 깊이와 여운만 남는 기분이랄까요. '아, 도대체 이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누굴까?', '나도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다' 보고 나면 만든 사람이 궁금해지고,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들었던 이야기들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그런 이야기들을 충분히 즐기고 소화할 수 있는 시기가 오겠죠. 그때까지 조금은 가볍게 떠다니며 지내려고 합니다. 가볍게 떠다니는 마음으로 즐긴 이야기들을 편하게 읽어주세요💗

 

 오프닝에서 말했듯 긴 영화를 잘 안 보는 대신, 요즘은 종종 단편영화를 봅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이런 반전을? 이렇게 한방을 날리는 대사를? 어쩜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제목을 지을 수 있지? 단편영화를 보면 이런 충격을 받게 될 때가 많더라고요. <전체관람가+: 숏버스터>는 영화 감독들이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고군분투기를 다룬 예능인데요.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님,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님, 배우 겸 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류덕환 감독님,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연출한 주동민 감독님 등 다양한 감독님들의 단편영화를 만나볼 수 있어요. 평행세계라는 주제를 놓고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감독님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같이 봐요! 

 Q. 무엇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나요? 

= 대단히 아름답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인데, 길을 지나가다 제철 과일을 보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누가 생각나서 사게 되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사랑이겠죠. 그런 마음들을 예민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다 느낄 수 있는 건데 막상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다들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게 피곤해서 지나치는 것들이요. 

 지난 주말에는 충동적으로 정동진을 다녀왔습니다. 쉽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떠나야겠다, 고민만 하다가 잠들었는데요. 그렇게 적당히 일찍 눈을 뜬 토요일 아침, 기차표를 끊어서 무작정 떠났는데요. 정동진의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문을 여는 영화 서점이 있어요. 영화 원작 소설, 영화 감독의 에세이 등 영화 테마로 큐레이션된 다양한 책들을 만나볼 수 있고, 종종 영화 상영회도 열려서 영화도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요. 그 서점을 방문해서 책을 고르고, 팝콘 먹으면서 하이볼도 마시고, 엽서를 구매해서 일기를 썼던 평화로운 시간들이 오래 남더라고요. 그 공간을 채웠던 영화 ost 중 여행 분위기에 가장 잘 어울렸던 비긴어게인의 OST를 가져왔습니다. 언젠가 정동진에 갈 기회가 생기신다면 방문해보시는 걸 추천해요! 

이스트씨네 -  강원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73 1층

애시드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210-1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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