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를 웃기는 능력은 정말 갈수록 귀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업로드된 핑계고를 보는데, 쉴새없이 에피소드로만 흘러가는 대화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이렇게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밖에 자주 나가고 사람들을 자주 만나서 그렇다.' 누군가에게 운 좋게(?) 재밌는 일들이 자주 생기는 게 아니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 재밌는 일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 사는 게 재미없다면 그만큼 안 돌아다녀서 그렇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요즘 정말 바빴고 집에 오면 뭔가를 할 기력이 없어서 뻗어서 잠들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사니까 진짜 재미가 없더라고요. 나도 내가 재미없는데, 누가 날 재밌어 해주겠어! 재미없는 대화 상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상한 승부욕을 느끼며, 어떻게든 좋아하는 걸 좀 하고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 최근 제가 받았던 가장 감동적인 카톡 중 하나는 "내가 좀 더 재밌는 인생을 살아서 너를 웃게 해줘야겠다"였거든요. 

 2. 그래서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어딘가로 도망쳤습니다. 하루는 한강에 갔는데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어서 한강도 뿌옇고 말 그대로 '다크서울' 같더라고요. '다크서울' 날씨에도 치킨과 떡볶이를 시켜먹는 커플들과 친구들이 꽤 있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한강에 오긴 왔는데 산책할 에너지도 없고, 흔들의자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 멍하니 한강을 봤습니다. 한때 걸어서 한강을 갈 수 있는 동네에 살았는데 (사실 이사한 지 겨우 1년 좀 지났어요) 그때도 흔들의자에 종종 앉았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다른 한강공원이지만 같은 흔들의자에 앉으니까 괜히 그때로 돌아간 것 같고. 흔들의자에 앉아 영양가 없는 고민상담을 하다가, 갑자기 택시 잡아서 만두전골을 먹으러 갔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 만두전골 진짜 맛있었는데. 혼자 흔들의자에 앉아서 영양가 없는 과거 회상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다음엔 어디 한강공원의 흔들의자에 앉아서 미묘한 데자뷰를 느끼고 있을까요. 기왕이면 한강을 벗어나서 아예 다른 나라의 강변 벤치였으면 좋겠다. 

 3. 지난번 오프닝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역시 진짜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를 쓸 때는 티가 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매번 그렇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들이 많으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오늘처럼 아무리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해도 겨우 한강에서 흔들의자 탄 이야기 정도가 전부인 날도 있는 거겠죠. 그래도 오늘까지 안 쓰면 더 쓰기 싫어질 것 같아서 뭐라도 썼습니다. 요즘은 '지루하다'와 '지겹다'의 차이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데요. 요즘은 사는 게 지긋지긋하고 지겨울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지는 않더라고요. 이 비슷한 단어들의 어감이 뭐가 다른 걸까. 왜 지겹지만 지루하지는 않은 걸까. 아직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저는 늘 사는 게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인물들을 좋아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 인물들이 어이없는 순간에 해사하게 웃을 때를 좋아했고요. '지겹다'와 '지루하다' 중 어느 쪽에 가까운 날들을 보내고 계신지, 기왕이면 두 단어와 다 멀리 떨어진 날들을 보내고 계셨으면 좋겠네요🌻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저는 추리는 못하지만 추리물은 좋아합니다. 미스터리 추리물인데 가벼운 코미디까지 섞여 있으면 더더욱 좋아하고요. 오랜만에 그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추리 신작이 나와서 가져왔습니다. 드라마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는 국빈 만찬이 열리던 날 미국 백악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세계 최고의 천재 탐정인데, 틈만 나면 탐조를 즐기는 '탐조 탐정'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백악관 셰프, 파티쉐, 대통령의 형제, 배관공, 청소부, 우연히 만찬에 끼어든 제3자 등 그날 백악관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용의자가 되고, 한 화씩 공들여서 각자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데요. 일단 세트가 세련되고 예쁘고, 그림으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도 아름답고, 버리는 에피소드 없이 각각의 캐릭터의 이야기가 잘 살아있어요. 특히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을 봤다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배우 우조 아두바가 연기하는 '탐조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압도적인데요. 사실 뒤로 갈수록 질질 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긴 하지만, 오랜만에 보면서 진짜 즐거웠던 추리물이기 때문에 '후더닛'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드릴게요🌻

Q. 작품이 다양한 연령대의 인물을 다루는 만큼 대선배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에요.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 애순이에게 나문희 선생님 목소리로 "왜? 고달퍼?" 하고 건네지는 질문은 화면 밖으로 힘을 뻗어 슬픔을 간직한 모든 사람들을 다독여줘요. 

= 사실 지금 인터뷰하기 직전에 나문희 선생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지은. 먹는 것도 열심히 먹고 울 때 두손 받쳐 열심히 울어. 고마워. 항상 몸 건강해"라고요. 현장에서도 선생님은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세요. 제가 나문희 선생님을 너무 사랑해서 언젠가 꼭 한번 작품을 함께해보고 싶었는데 행운처럼 <폭싹 속았수다>에서 만난 거예요. 이 장면을 찍던 날 촬영 직전에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없이 현장에 앉아 계시는데 그 분위기에 바로 압도되었어요. 공기 자체가 차분하고 안정적이더라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밥 먹었어? 뭐 먹었어?" 같은 질문을 잘 하지도 않고, 그런 질문을 좀 귀찮아하는 부류의 사람인데요. "밥 챙겨먹었어? 잠은 잘 잤고?"처럼 의식주와 관련된 질문들이 귀찮지 않고 애틋하게 들릴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 질문이 애틋해질 때면 '아, 나 지금 힘들구나' 비로소 자각하게 되더라고요. '밥은 당연히 먹는 거지, 그게 뭐가 궁금해?' 이게 아니라, 진짜 제대로 못 챙겨먹고 제대로 못 자는 시기에 저런 질문을 들으면 얼마나 다정하게 느껴지는데요. 그런 질문에 잘 대답하고 싶어서라도 밥을 잘 챙겨먹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나문희 선생님이 아이유에게 보내줬다는 이 문자 한줄이 그런 맥락에서 너무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먹는 것도 열심히 먹고 울 때 두손 받쳐 열심히 울어." 살다 보면 우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땐 회피하는 게 아니라 두손 받쳐 열심히 울고 응어리진 마음 다 풀어내라는 위로 같아서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아직도 저는 "밥 잘 먹었어? 잠은 잘 잤고?" 같은 뻔한 안부 인사도 서툰 사람인데요. 시간이 더 쌓이면 '먹는 것도 열심히 먹고 두손 받쳐 열심히 울어'라는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도 밥 잘 챙겨먹고 따뜻한 한 주 보내세요🥘

길손 - 서울 강남구 논현로175길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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