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사는 게 지겨워진다. 그래서 작년 여름엔 시를 배우러 갔다. 세상에! 내가 배운 것 중에 제일 재미있었지.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책꽂이 사이 구겨진 종이에 쓴 글씨가 보여서 펼쳐보았다. 이런 내용의 일기와 일부를 옮겨진 시가 적혀 있었다. 

 

 

 해야 할 설거지가 있는 것도 똑같고, '사랑이 많은 사람'과 거리가 먼 것도 똑같고, 그저 잘 만든 아름다움에 얹혀 있고 싶은 것도 똑같고. 사는 게 지겨워서 굳이 버스를 1시간 타고 시청역에 있는 카페에 가서 비싸고 맛있는 핫초코를 먹었던 날인 게 기억이 났다. (사실 그 카페에서 준 종이에 써놓은 거라 기억남) 저런 말을 썼는지도 몰랐고 저 시는 읽은 것도 기억이 안 난다. 지금 찾아서 읽어보니까 저 시의 뒷부분이 더 좋은데 왜 저 부분만 옮겨 썼는지도 잘 모르겠다. 약간 죽은 체하고 있으면 괜찮다는 말, 가끔 둥글게 모여 밥을 먹는다는 말이 좋았겠지 뭐.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랑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영화에선 둥글게 모여 밥 먹는 장면들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꼭 밥 먹을 때 중요한 말을 하니까. 별거 아닌 것처럼 인생을 구하는 말을 하기도 하니까. 

 17일 만에 사랑이 고갈되었다고 쓴 게 제일 웃겼다. 저때 뭐가 저렇게 짜증나서 시니컬하게 썼을까. 오늘은 2025년이 시작된지 165일이 지났다는데, 165일이 지난 결과는 아직 사랑이 고갈되진 않은 것 같다. 진짜 조금 남은 연료를 아껴먹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이없게도 여름마다 사는 게 지겨운데, 여름만큼 또 재밌는 일들이 많은 계절이 없는 것 같기도. 일단 다음주엔 양양을 간다. '믿을 구석'이 있는 서울국제도서전도 갈 거고, 솥뚜껑에 삼겹살도 구워먹을 거고, 바다에서 조개랑 돌멩이도 주울 거다. 그리고 페스티벌도 가야지. 더워 죽겠지만 돗자리에 누워서 하늘도 보고 시원한 맥주도 마실 거다. 집에 돌아와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연두부를 먹을 거야. 계획된 좋은 일들과 우연한 좋은 일들을 테트리스처럼 쌓아서 지겨운 여름을 잘 버텨야겠다.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청춘'을 정의한다면 마음껏 좋아할 수 있는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마음껏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빠더너스의 이번 시리즈 댓글을 보면 이 채널의 장르는 코미디가 아니라 청춘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일요일 낮에 몰아보면서 너무너무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말 그대로 빠더너스 채널에서 영화를 수입하고 싶어서, 칸 영화제 필름마켓에 가는 과정을 담았는데요. 영화 수입과 배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영화 시작할 때 '수입: 빠더너스'라는 로고가 뜨면 얼마나 기쁠까. 그 한 장면만 생각하고 "영화 어떻게 사?", "너 영화과니까 알지 않아?", "필름 마켓 가면 살 수 있지 않나?" 이런 우당탕 대화를 거쳐 칸에 갑니다. 뤼미에르 극장에 입장하려면 턱시도를 입어야 하는데 미처 몰랐어서 ZARA에 급하게 쇼핑 가고, 비둘기마저 예쁘게 보이지만 관광객 모드를 버리고 일하겠다고 굳세게 다짐하고, 무거운 미슐랭 피규어를 꼭 갖고 싶어서 오히려 캐리어를 새로 사는 사람들. 어딘가 어설프지만 너무너무 재밌는 영화를 봤을 때, 인기가 좀 없을 수는 있지만 우리 팀의 색과 잘 맞는 영화를 찾았을 때, 정말 기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개인적으로도 필름마켓이 저렇게 진행되는구나, 영화를 사고파는 과정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재밌었습니다. 보면서 내내 '아, 이래서 내가 빠더너스 좋아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그게 뭘까? 특히 그런 고민이 많은 요즘에 참 좋았던 시리즈, 같이 봐요💍

  

 인사 담당 관리자 캐슬린은 회사를 ‘기분 전환’을 하는 기계라고 표현한다. 앞당겨진 죽음을 모른 척 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땐 자꾸 감정을 뒤적이게 된다. 좋아하는 것들과 하고 싶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마찬가지.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면 할수록, 애써 억누르던 두려움과 슬픔도 엄습한다. 그러므로 회사만큼은 감정을 소거한 공간이어야 한다. 오로지 숫자로 점철된 회계 장부를 보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결과값을 산출하는 시간만큼은 죽음의 공포도,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중략) 

 그럼에도 캐럴은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고 호명한다. 직원1, 직원2, 직원3이 아닌, 브루스, 케이시, 어맨다를 부른다. 죽은 동료의 장레식을 치르고 애도를 표한다. 종말 이전의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캐럴과 동료들은 두려움과 슬픔을 뚫고, 친밀해지는 걸 택한다. 그 친밀함이 이내 깊은 상실과 허무함을 동반한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우는 일이 빈번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더라도, 그래도. 이제 곧 영원히 잃고 말 친구와 함께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며 감자튀김을 먹는 것. 그것이 캐럴이 원하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하루이지 않을까. 캐럴 식의 카르페 디엠. 서핑을 하고 소설을 쓰고, 티베트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캐럴은 캐럴답게, 도나는 도나답게 종말을 맞는다면 그보다 더한 카르페 디엠이 있을까. 나는 그 편이 더 용기 있다고 느낀다. 

 한동안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질문에 꽂혔던 적이 있었어요. (망고네 슈퍼를 뒤져보니 무려 5년 전😮) 그때 저는 내일 종말이 와도 그렇게 절망적일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을 보낼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요. 그 말을 듣고 누군가는 비관적이라 하고, 누군가는 HONNE의 WHAT WOULD YOU DO? 를 들려줬어요. 내일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후회는 없었으니까 그냥 순응할 것 같아! 이게 제 입장이었는데, 요즘은 또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일은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나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아. 애초에 요즘은 그런 상상을 잘 안 하는 것 같기도요. 늘 '보고 싶어요' 목록에 있었지만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도통 진도가 안 나가던 <종말에 대처하는 캐롤의 자세> 시리즈에 대한 글을 가져왔습니다. '두려움과 슬픔을 뚫고 친밀해지는 걸 택하는' 이야기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이 시리즈를 보고 싶어졌어요. 종말을 앞두게 된다면, 처음엔 여행을 떠난다거나 이상한 춤을 배운다거나 평생 안 했던 이상한 짓들을 좀 하고 싶을 것 같은데요. 아마 저는 얼마 못 가 그냥 살던 대로 살고 싶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좋아하는 이야기하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보면서, 이불 속에 푹 파묻혀 잠들기. 나다운 종말을 맞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위의 버튼을 클릭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