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코너를 쓰면서 오랜만에 예전에 썼던 기획안과 작문 폴더를 열어봤어요. 흐릿하게 남아 있는 기억 속에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썼구나. 이런 상상을 하고 글을 돌려보고 피드백하고 고쳐쓰던 시절. 예능 PD 준비하면서 썼던 기획안이랑 작문들도 있고, 기억은 안 나지만 드라마PD도 지원하겠다고 스토리텔링 폴더도 만들어놨더라고요. 어설프지만 지금 읽어도 웃긴 건 어떻게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취향이 한결같아? 싶어요. 운명적인 로맨스 대신 삽질하는 로맨스가 좋고, 능력 있고 차가운 여성 캐릭터 좋아하고, 엉망진창 우당탕탕 이야기들을 좋아하고. 스터디에서도 공개하기 부끄러워서, 저 혼자 봤던 N년 전 저의 구성안을 살짝 공개합니다. 

*타이틀: 사랑은 대기만성

*로그라인: 구조 능력은 뛰어나지만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방관과 단골 중국집 배달원이 펼치는 대기만성형 로맨스

*기획의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천차만별, 사랑을 이루는 과정도 천차만별.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사랑의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온갖 시행착오를 겪을 때가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기적’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로맨스 드라마가 지겨워졌다면, 사랑에 도달하기까지 끊임없이 삽질하는 ‘대기만성형’ 로맨스는 어떠신가요?

*캐릭터 소개:

- 한대기: 올해의 소방관 상을 받을 정도로 능력 있는 소방관이지만, 타인의 감정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오히려 그런 점을 살려, 어떤 급박한 현장에 가도 침착하게 판단을 내리고 로봇처럼 사람을 구해낸다. 언론에서는 그녀를 ‘히어로’라고 부르지만, 가까운 지인들은 ‘얼음공주’라고 부른다. 

- 김만성: 한대기가 자주 시켜먹는 단골 중국집 ‘만리장성’의 배달원. 연애할 때마다 간도 쓸개도 다 빼주다가 꼭 차이는, 을의 연애 전문가. 일이든 사랑이든 결과가 좋지는 않아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늘 최선을 다하는 사람.

 사실 지금 보면 이게 정말 클리셰잖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전형적인 캐릭터인가 싶지만요. 아마도 '소방관'이 키워드였던 것 같은데, 소방관과 중국집을 엮은 어이없는 로맨스가 조금은 귀여웠습니다. 소방관 직업 특성상, 식사를 하다가 도중에 출동해야 할 때도 많아 동료들은 다 면류에서 밥류로 갈아탔지만, 꿋꿋하게 짜장면을 고수하는 한대기. 그리고 도대체 저 소방서에서 유일하게 짜장면을 고수하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해져서 찾아갔다가 면치기하는 모습에 첫눈에 반한 김만성. 첫눈에 반한 그녀에게 뭐든 다해주고 싶은 김만성은, 우연히 '깐풍기 먹고 싶다'고 말한 한대기의 말을 엿듣고 그때부터 깐풍기 요리 연습에 나서는데요. 사장님은 설거지와 재료 다듬기만 시키고, 도무지 깐풍기를 배울 기회는 생기지 않아서 몰래 튀김 요리에 도전한 김만성!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연기가 폴폴 올라오고, 손님으로 왔던 한대기가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읽으면서 별의별 걸 다 했네, 어린 시절 일기 읽는 기분으로 재밌는 것도 있었는데요. 이 짧은 1장 반짜리의 구성안을 보면서, 나 이렇게 열심히 살던 시기가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열심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고 싶은 말을 허구의 이야기에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내 진짜 이야기를 허구에 살짝 섞어서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가짜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싶다. 오랜만에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용기가 생기면 알려드릴게요. 다들 용감해지는 여름 보내세요🔥

 Ps. 지난 오프닝에서 소개했던 촌캉스의 흔적을 보냅니다. 자연 속으로 또 도망치고 싶어요...🌿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오랜만에 연애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1화만 보고도 이건 소개하고 싶은데... 했던 넷플릭스의 신규 연애 예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를 가져왔는데요. 살면서 연애를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다'라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모이는데요. 6주 동안 운동, 패션, 메이크업, 마인드, 스피치 등 다방면에 걸쳐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새로워진 모습으로 제주도에 모이게 됩니다. 사실 출연진들의 메이크오버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나? 그 분량을 질질 끌지 않고 1화에서 빠르게 비포/애프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도 좋았어요.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출연진들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점이에요. 썸 타본 경험을 물어보자 여름 성경학교 때 (기도하면서) 손 잡은 누나 이야기를 하거나, 자리 선정의 이유를 묻자 관심 있는 사람 옆자리가 아니라 더우니까 선풍기 옆자리에 앉았다고 답하고. 예측할 수 없는 토크 방향도 재밌고, 사랑에 빠졌다가 식었다가 설렜다가 망설이다가 하는 그 모든 과정들이 사랑스럽고 솔직해요. 원래 연프는 패널 리액션 보는 맛이 중요한데, 카더가든, 이은지, 강한나, 서인국 등 모솔의 연애를 돕는 썸메이커들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이렇게 좋은 거였나? 연애 예능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가까워지는 성장 예능을 보는 느낌도 있어요. 여름밤 사랑스럽고 솔직한 예능을 찾는다면 추천🍎 

  

 체내에 유입된 사랑의 미생물 로로마는 인체가 사랑을 느낄 때 분비하는 호르몬의 칵테일에 감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 이론상으로는 짝사랑에도,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와 같은 가족 간의 사랑에도, 친구 사이에도, 보편 이류에의 애정에나 하물며는 반려 동식물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일정한 효력을 지니지만, 당신의 말처럼 호르몬 분비가 활발한 연애 초기에 가장 뚜렷한 효과를 보인다. 거꾸로 말하면 사랑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로로마의 존재가 공기처럼 당연해진 요즘 세상에서 새롭게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어떤 능력이 증대되게 되어 있으므로. 

 "아, 좀 웃길 수도 있는데요." 

 수호는 음식을 가득 물고 있는 입을 가리며 뜸을 들인다. 뭔데, 뭐가 좋아졌길래. 네가 그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건 알겠어, 싫긴 해도 그건 인정할 테니까 어서. 머리가 좋아졌니? 수호 너 그러잖아, 시험 자신 없을 때는 그럭저럭 봤다고 하지만 자신 있을 때는 별로 안 어려웠다고 하잖아. 그 여자애 사귀고서 이번 시험 잘 본 거지? 암기력이 좋아졌니? 논리적 사고가 증대됐어? 

 저는 원래 예능 PD가 되고 싶었는데요. 한동안 기획안과 작문 스터디를 했었는데, 작문 스터디를 할 때면 뻔한 소재를 어떻게 신선하게 바꿀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게 일이었어요. 그 당시 이런 작문을 썼는데요. 사랑에 빠질 때 촉진되는 호르몬인 '페닐에틸아민' 수치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일명 '사랑' 바이러스. 오로지 '사랑'에만 빠져 다른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속출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람들이 갑자기 사표를 내고 떠나고, 하던 일을 접고 가게를 폐업하는 이야기. 얼마 전에 [바이러스]라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고, 가끔 사랑은 병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이 뭐라고, 저렇게 사람이 변하는 걸까. 이번에 가져온 소설은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어떤 능력이 증대된다는 설정을 갖고 있는데요. 어떤 능력이 증대될지는 랜덤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이 설정 속에서는 재수생이 연애를 해서 연산 능력이 좋아지고 의대에 가게 되는 일이 가능해져요. 사랑에 대한 무궁무진한 상상력이 재밌기도 하고, '인류 역사상 사랑보다 오래 유행한 게 있을까?'라는 도입부가 매력적이라 가져왔어요. 어쩐지 대단히 쓸모 있는 능력이 증대되는 사랑은, 그 사랑 자체가 시시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차라리 '점프력'처럼 귀엽고 쓸데없는 능력이 증대되고, 그 사랑 자체가 덜 시시하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저랑 같이 읽으면서 과몰입해보실래요?

노케찹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20 (용산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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